옆집에 살았었다. 내가 싫어하는 그 애.
아는 애냐면, …굳이 말하자면 아니. 태어날 때부터 그 동네에 살았던 나에게 그 애는 우리 동네에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같은 이웃이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왔다는 것 같기도 하고. 부모님은 그 애가 예의바르고 착해서 좋다며 나한테도 친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뭐야, 한국 문화 같은 건 잘 모른단 말야.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 건데. 어색하다고. 그런 이유에서 한동안 말도 걸어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말을 걸었던 건, 지난 여름 때였다.
“긴 소매를 입으니까 덥잖아. 열사병, 얕볼 게 아니라고.”
그 아이의 어설프게 정돈된 잔머리 아래로 땀이 비집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초목이 짙어지는 여름의 초입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을 예고하는 매미 울음소리가 귀따갑게 울리는 절기에, 계절을 부정하듯 답답하게 긴 소매 옷을 입은 그 아이에게 나는 참견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순전히 부모님 말씀 때문이다.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는데, 열사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이 들려 오면 내가 챙겨주지 못한 걸 나무라실 테니까. 그런데 그 때 반응이 어땠더라.
“아.. 어, …고마워.”
가로수가 말을 걸었다는 양 놀라서 올려다보는 눈이 고양이 같다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사람 말을 하듯 엉성하게 짤막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어를 잘 못 하나? 내 목소리를 놓쳤나? 이 다음엔 무슨 말을 해야 해? 고민하는 사이에도 그 애는 다른 말을 기다리듯 나를 보고 있었다. 괜한 참견이었던 게 틀림 없다. 뭐야, 친해질 필요 없잖아. 얘는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고. 괜히 부모님 말에 고분고분했던 게 창피했고, 그대로 돌아 집으로 뛰어 들어왔다. 겨우 열 발짝 앞인데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듯했다.
자존심이 상한 나는 굳이 말을 걸지 않고 멀리서 관찰만 하기로 했다. 저번처럼 긴 소매나 입고 다니다가 쓰러지면 곤란하니까. 다행인지,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는 그 애도 별 수 없이 반소매 옷을 입기 시작했다. 어디서 다치고 다녔는지 팔이 흉터 투성이였다. 그런 걸 숨기려고 긴소매를 입고 다녔나, 그러게 평소에 조심했으면 좋았잖아. 그 애에게 건네지는 못하는 핀잔을 꾹 삼키고 나는 흉터를 못 본 체 했다. 그 상처가 스스로를 괴롭힌 흔적일 수도 있다고, 깨달은 것은 한참이나 지난 뒤였다.
그 애는 잊을 만 하면 눈에 밟혔다. 옆집이니까 당연하겠지만, 그 때는 어쩐지 그 점이 몹시도 거슬렸다. 하루는 우리 집 앞 나무에 매달린 벌레를 보고 놀란 그 애와 마주쳤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앞마당 살충 담당이 되었다. 또 다른 날은 유난히 붉은 저녁 노을을 카메라에 담는 뒷모습을 보기도 했다. 매일 보는 건데 뭐가 예쁘다고. 특이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그 날만큼 예쁜 노을은 볼 수 없었다. 또 하루는 그 애가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우연히 봤다. 고양이 같던 얼굴에 웃음을 띠고 또래 아이같은 장난스런 말장난을 주고받으며, 험한 말투도 거침없이 구사하는 모습이 꼭 딴 사람 같았다.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는 남들과 반 보 멀어져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얘도 참. 그렇게 친해지고 싶으면 가서 같이 어울리면 좋잖니.”
“누가 친해지고 싶다고 그래? 아냐, 아냐. 이건 그냥.. 그… 거슬리는 거야! 그래. 흥.”
“정말 누굴 닮아서 이렇게 솔직하지 못한지, 원…”
놀리듯이 호호 소리내며 웃는 엄마를 흘겨 보다가 쿵쿵거리며 방으로 올라왔다. 과일이라도 가져다 줄까? 됐어, 금방 잘 거야. 평소같은 퉁명스러운 대답에 맑은 웃음소리가 한 번 더 화답했다. 나는 씩식거리면서 침대에 풀썩 누웠다.
친해지고 싶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왜 그 애랑?
나는 다른 친구 챙기기도 바쁘고, …그 애도 더 친한 친구 많아 보이고…
그렇게 소심한 애는 별로인데다, …나같은 성격 성가셔 할 것 같고…
게다가 뭐, 어차피 공통점도 없잖아!
… 억지로 친해질 수는 없는 거라구.
… …친해질 계기가 생기면 그 때 친해지면 되잖아.
이런저런 생각 끝에, 속에서 답답하게 끓어오르던 감정이 차츰 가라앉았다. 그래, 조바심 내지 말아야지. 아직 서로 잘 모르니까 서먹한 거야. 옆집이니까 만날 기회는 얼마든지 있잖아. 물론 그 애랑 친해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아무도 듣지 못할 변명을 하면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그 해, 나는 뼈아픈 교훈 하나를 얻었다.
어떤 기회는 눈에 보일 때 붙잡지 않으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고 자란 동네를 이렇게 쉽게 떠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가 능력을 인정받아서 주요 지부로 발령이 났다고 했다. 살 곳도, 내가 전학할 학교도 이미 알아본 뒤라 보름 뒤면 떠날 수 있고, 그러고 나면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나한텐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았으면서, 누구 마음대로 정해버리는 거야! 나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소리쳤다. 부옇게 흔들리는 시야에 아빠의 미안한 얼굴이 잡혔지만, 이번만큼은 괜찮다고 말해 줄 기분이 아니었다.
속상한 마음에 새벽녘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장난하지 마, 친해지라며.. 아직 이름도 못 물어봤단 말야. 보름 뒤면 못 만나는데, 이제 와서 친해지자고 어떻게 말해? 꼴사나운 눈물이 베갯잇에 묻어났다. 아쉬움과 초조함이 서러움 사이사이로 나를 쿡쿡 찔러댔다. 속상한 마음을 베개 위로 쏟아내며 한참이나 눈물을 쏟고 있는데…
…
드르륵ㅡ
창문을 여는 작은 소리가 났다.
옆집이었다. 내 방과 맞닿은 위치에 그 애의 방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잠깐동안, 나는 서러움도 잊고 숨을 죽였다. 열린 창 너머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그 애의 목소리 한 줌이라도 싣고 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창문이 열린 후로도 한참동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뭘 하는 걸까? 이렇게 늦은 시간에 갑자기 왜 창문을 연 걸까? 그보다 왜 안 자고 있니? 너도 무슨 고민이 있어? 나는 말야…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심호흡으로 누르고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조금은 삐그덕거리는 걸음걸이로 창가로 나아가, 나도 모르게 창틀 너머로 그 애의 방 창문 쪽을 내다봤다.
그 애가 있었다. 우수에 잠긴 듯한 얼굴,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 들여다보면 빼곡한 별이 그 눈동자에 비쳐 보일 것 같았다. 고요하고 어둡지만 반짝임에 가득 차 있는 그 모습이 밤하늘을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뭐 해? 이런 시간까지.”
내 말이 너무 퉁명스러운 것 같아 깜짝 놀라는 동안, 그 애도 나를 돌아보고 놀라는 게 보였다. 이로써 두 번째였다. 긴 달리기를 한 것처럼 다시 두근거림이 밀려왔다.
“별이 예뻐서. …너는?”
“난… 음. 그런 게 있어.”
“눈가가 빨간데… 울었어?”
“아냐, 울긴 누가 울었다 그래! …”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그 애의 눈동자가 민망해서 공연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 밤하늘도 꼭 그려진 듯이 예뻤다. 하늘 좋아해? 그 애는 친절하게 말을 돌려 주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얘기가 잘 통했다. 그 때까지 주저한 게 무색할 정도로. 그 애는 하늘을, 그 중에도 특히 별을 좋아한다고 했다. 좋아하는 것을 사진으로 담거나, 그 너머에 있을 무언가를 공상하는 것도 좋아한다고 했다. 나도 밤하늘은 좋아해. 우주를 올려다보는 것 같잖아. 그렇게 돌려줬더니, 그 애가 고요한 얼굴에 옅은 흥미를 띠는 것도 보였다. 처음으로 깊은 공통점을 찾았고, 별과 우주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우리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렇게 빨리 친해질 줄 알았다면, 이렇게 쉽게 공통점을 찾을 줄 알았다면…
이야기가 즐거워질수록 아쉬움이 복받쳐 올랐다. 있잖아, 나 너랑 친해지고 싶었어. 네가 싫어하는 벌레는 내가 다 잡아 줄 수 있다고 생색도 내고 싶었어. 네가 찍은 하늘 사진을 같이 들여다보고 어디가 예쁜지 알려달라 하고 싶었어. 네가 스스럼 없이 대하는 친구들처럼 나도 같이 떠들고 싶었고, 네 긴 머리카락을 예쁘게 묶는 법도 찾아 놨는데… 글자로 정제되지 못한 감정은 방울방울 응어리가 되어 맺혔다. 이야기를 하다 말고 나는 다시 눈물을 쏟아냈고, 그 애가 놀랐는지, 걱정했는지, 위로했는지 이제 와서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모든 대화가, 그 만남조차도 내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기억이 나는 건 과하게 눈부신 아침해와 전날 수분을 한 바가지쯤 뽑아낸 탓으로 밀려오는 선명한 두통 뿐이었다.
결국 그 날 이후 한 번도 다시 말 붙여보지 못하고 나는 그 동네를 떠나 왔다. 마지막으로 이웃에 음식을 돌리는 날 구태여 음식을 받아 옆집에 나눠주러 갔지만, 그 애는 하필 그 날은 집에 없었다. 탓할 곳 없는 야속함을 누르고 차에 올라탔다. 이로써 정말 그 날 밤의 일이 현실이었는지 물어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차로 이동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혹시 네가 보이지 않을까, 창밖을 두리번댔다.
“메일 주소라도 받아서, 메일 친구가 되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까지 할 일이야? 됐어, 너무 유난스러운걸.”
“꼬맹이 때 얘길 몇 년이나 지나서 꺼내는 게 더 유난이지 않니?”
“뭐가 꼬맹이라는 거야? 나는 진지한 고민이었다고.”
“호호, 어련하실까요.”
이제와서는 담소거리로 터 놓을 정도로 희미해 진 감정이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애 생각을 한다.
내가 싫어했던, 옆집에 살던 그 애. 한여름의 더위에 땀을 훔칠 때마다, 길어진 머리카락을 요령있게 정돈해 올릴 때마다, 올려다 본 밤하늘이 드높고 깊을 때마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를 때마다. 그 짧은 만남이 네게도 이런 흔적을 남겼기를. 언젠가 유명해진 내 사진을 보면 나를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근데 엄마, 그 애 이름 혹시 기억해?”
“어머, 뭐니,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던 거야? 너도 참.. 그 집 애 이름이ㅡ 그렇지.”
■ ■ ■ ■ ■, 라고 하더라.
3,000자 + 현대 + 기본 마감 타입 작업물입니다.
'커미션 샘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짝사랑, 계절] 라이벌(ㅅㅇㄴ / ㅇㅂ님) (1) | 2024.06.09 |
---|---|
[짝사랑, 찰나] 망했다.(ㅇㅅㄹ / ㅁㅇ님) (0) | 2024.05.30 |
[짝사랑, 찰나] 여름날의 초목 같은 너에게.(ㅈㅇㅁ / ㅇㅇ님) (1) | 2024.05.30 |
[짝사랑, 찰나] 기약 없는 기다림(ㄹㅊㅇ / ㅍㅇ님) (0) | 2024.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