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어떻게 넘어가는 거야? …익.. 아잇. 아, 됐다.”
긴장되어 있던 등줄기에서 힘이 풀렸다. 아, 뭐가 이렇게 복잡해? 투덜거리면서 구석에 붙어있는 Next 버튼을 클릭했다. ‘튜토리얼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게임을 즐겨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의자에 풀썩 기댔다.
장장 사흘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튜토리얼에만 3일! 내 하는 꼴을 구경하고 있던 친구는 이 소식에 숨이 넘어가라 웃어댔다. 살면서 이렇게 게임 못 하는 사람 처음 본다고.. 난들 내가 이렇게 못 할 줄 알았나, 뭐. 게임이라곤 초등학생 때 해 본 할리갈리가 전부였단 말야. 나도 게임 좋아서 하는 거 아니거든? 이게 다… …에휴.
구구절절 변명거릴 떠올리다 보니, 차라리 게임이 좋아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바보는 많고도 많지만, 동생네 학원 선생님이랑 대화 한 번 더 해 보려고 게임 튜토리얼을 붙잡고 3일이나 씨름하는 바보는 나 밖에 없을 거다. 그렇게 씨름해서 무슨 대화를 하겠냐고? 선생님, 게임 좋아하신다면서요? 저도 게임 할 줄 알아요! 무슨 게임 하세요? 와, 저랑 같이 할래요? …같은 거? 친구한테 얘기했더니, 취미는 또 어떻게 알았냐며 질색을 한다. 아니, 그건 동생이 말 해 준 거거든? 길에서 학원 선생님을 마주쳤는데 친구랑 게임 얘기를 하시더래… …하, 나 지금 구차하니.
몇 시간이나 쥐고 있던 게임기를 놓고 새빨개진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그 날 선생님 앞에 섰을 때 내 얼굴이 딱 이만큼 빨개졌을 거다. 아, 그 선생님이 정말 잘생겼거든. 볼은 문질러보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 보이고, 머리카락은 햇볕에 반짝거리고. 눈부시게 웃으면서 말을 건넬 때는 선생님 뒤로 후광이 보이는 것 같았고.. 그래서, 얼굴을 보고 당황이라도 했던가.
안녕하세요, 날씨가 진짜 좋죠!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아서, 동생 데리러 왔어요. 동생이랑 산책이라도 같이 하려고요! 날씨가 엄청 좋으니까요, 네..
두서없이 나불대는 주둥이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머리.
망했다! 라고 생각한 순간 눈앞에 그려진 선생님의 환한 미소를 나는 그 뒤로 며칠 밤이나 꿈에서 봤다. 산책은 어디로 갈 건지, OO공원 앞에 무슨 카페가 새로 생겼는데 가 봤는지, 그 카페에서 어떤 커피를 꼭 마셔봐야 한다던데 커피는 좋아하는지,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이야깃거리에 그저 쩔쩔매면서 네, 아뇨, 좋아해요, 하고 어버버댔던 기억도 또 며칠 밤이나 악몽으로 꿨다.
살면서 한 번도 사람 앞에서 쫄아 본 적이 없는데! 그 땐 왜 그랬지? 아무튼 나 다음번에 반드시 이미지 쇄신 할거야. 두고 봐. 게임 고수가 돼서 선생님이랑 대화 할 거라고. 비장하게 말하며 게임패드를 다시 바로 쥐었다. 근데, 전진 버튼이 뭐였지? 그 말에 한 번 더 박장대소를 한 친구가 놀리듯이 내게 말한다.
왜 그렇게 대화에 집착하냐? 그 선생님이 그렇게 좋아?
“… … …아.”
1,000자 + 현대 + 기본 마감 타입 작업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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