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살았었다. 내가 싫어하는 그 애.아는 애냐면, …굳이 말하자면 아니. 태어날 때부터 그 동네에 살았던 나에게 그 애는 우리 동네에 갑자기 나타난 불청객 같은 이웃이었다. 듣기로는 한국에서 왔다는 것 같기도 하고. 부모님은 그 애가 예의바르고 착해서 좋다며 나한테도 친하게 지내라고 했지만.. 뭐야, 한국 문화 같은 건 잘 모른단 말야. 무슨 말을 건네야 하는 건데. 어색하다고. 그런 이유에서 한동안 말도 걸어보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말을 걸었던 건, 지난 여름 때였다. “긴 소매를 입으니까 덥잖아. 열사병, 얕볼 게 아니라고.” 그 아이의 어설프게 정돈된 잔머리 아래로 땀이 비집고 내려오는 게 보였다. 초목이 짙어지는 여름의 초입이었다. 본격적인 여름을 예고하는 매미 울음소리가 귀따갑게 울리는 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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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미션 작업물 업로드참 낭만적인 직업이라 그랬지. 그 사람, 소환수를 다양하게 다룰 줄 알거든. 마주칠 때마다 다른 소환수를 데리고 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 소환수는 주인의 능력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며? 그 사람의 소환수는 꼭 주인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어. 손발이 딱딱 맞더라니까. 이야, 엄청 강한 비술사인가보다 했지. 아, 내가 말한 낭만적인 직업이 모험가는 아냐. 뭐, 모험가도 낭만으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지~ 그런 놈들 대다수는 마물들의 저녁거리가 돼버릴 거고 말야. 그 사람도 따지고 보면 위험한 곳에 뛰어드는 사람이지만, 던전같이 위험한 곳에는 갈 이유조차 없을 걸? 거긴 아무튼 사람이 살지 않으니까 말야. 아차차, 내가 아직 그 사람 직업을 말하지 않았던가? 배달부래, 배..
“도대체 어떻게 넘어가는 거야? …익.. 아잇. 아, 됐다.” 긴장되어 있던 등줄기에서 힘이 풀렸다. 아, 뭐가 이렇게 복잡해? 투덜거리면서 구석에 붙어있는 Next 버튼을 클릭했다. ‘튜토리얼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게임을 즐겨 보세요.’라는 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의자에 풀썩 기댔다. 장장 사흘만에 이룬 결실이었다. 튜토리얼에만 3일! 내 하는 꼴을 구경하고 있던 친구는 이 소식에 숨이 넘어가라 웃어댔다. 살면서 이렇게 게임 못 하는 사람 처음 본다고.. 난들 내가 이렇게 못 할 줄 알았나, 뭐. 게임이라곤 초등학생 때 해 본 할리갈리가 전부였단 말야. 나도 게임 좋아서 하는 거 아니거든? 이게 다… …에휴. 구구절절 변명거릴 떠올리다 보니, 차라리 게임이 좋아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
지금쯤이면 넌 비행기 탔겠다. 여긴 회포를 핑계 삼아서 술자리가 한창이야.아쉽네, 너도 있었으면 진탕 먹였을 텐데. 네가 없으니까 내가 다 마시잖아. 덕분에 초저녁부터 죽을 맛이야.술이 올라서 그런가, 밤바람이 차네. 어후. 어, 저기 날아가는 게 네가 탄 비행긴가? 그나저나, 너 그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 거 오늘 처음 알았어. 혼자 어른 다 된 것같은 표정이나 짓고 말야. 낯설게… ■ ■ ■ 저 자식 언제 저렇게 의젓해졌냐고 다들 야단이더라. 너야 여기저기 불려다니느라 못 들었겠지만. 너무 애 취급 한다고 섭섭해하지는 마. 다들 아쉬워서 그래. 씩씩하고 싹싹한 놈이라 어딜 가든 잘 지낼 텐데, 그래도 우리한텐 괜히 눈이 가고 손이 가는 게 너였거든. 안 그렇게 생겨서 은근히 고집도 센 데다, 궂은 일..
그대, 이 가슴에 품은 꺼지지 않을 불꽃 같은 이여.아마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앙상한 나무 가지가지마다 천제께서 내리신 하얀 꽃송이로 치장하여 동장군께 예를 갖출 적에. 그 장군 걸음하시는 길목길목마다 흰 융단 깔리어 그의 행차를 알릴 적에. 미처 때를 알지 못하고 엄동설한에 깨어난 저는 동장군의 행차에 감사하지 못하는 불청객에 지나지 않았겠습니다. 곁을 스치는 서리바람조차 그런 제게 관심 한 줌 건네지 않았지요. 그 가운데 손을 내밀어 주신 것이 당신이었습니다.일순 당신을 풍요의 정령이라 착각한 것을 용서하시길. 당신의 발자욱 따라 피어나는 꽃송이가 반가웠던 탓이겠습니다. 저승꽃인가 하자니 옹골진 모양새가 그렇지 않았고, 설중매인가 하자니 그보다도 붉더랍니다. 그 당당한 걸음마다 동장군의 융단이..